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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남은 기나긴 겨울, 견딜 수 있을런지…”

유일한 수입, 수급비도 내달부터 끊길 처지

등록일 2017년12월06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황 재 현 | 가명·58·천안 봉명동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제 탓이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두 후회스러운 일 뿐이에요. 아들 둘과 헤어진 아내에게도 용서를 빌고 싶어요. 진심으로요.”

옷소매를 들어 애써 참았던 눈물을 닦는 황재현 씨. 그의 거친 손가락 끝에는 때 묻은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시력이 안 좋다보니 얼마 전 손톱을 깎다가 다쳤다고 했다.

몇 번이나 주민센터를 찾아가 하소연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꽤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 본인의 사연을 길게 털어놓던 과정에서 감정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황씨는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를 놓아버렸던 선택

그의 고향은 전라남도 구례군. 지리산 화엄사 입구 어딘가의 동네라고 한다. 

황씨는 농사를 짓는 가난한 가정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빈한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라다보니 언젠가 도회로 나가는 일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학교를 보내 준다는 큰 형님의 말에 17살 때 집을 나와 서울로 올라올 때만해도 두려움보다 기대가 훨씬 컸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상경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아 형과 이별을 해야 했고 그는 서울 구로동의 한 압연 공장에서 혼자 일을 시작했다. 쇠를 압축해서 늘리는 일이기에 그 자체도 힘들었지만 숙소가 없어 경비실 옆에서 움막을 치고 살다 보니 일상의 고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입대 전까지 3년여 동안 그 일을 하다가 제대 후에는 광주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광주상고를 다니던 막내를 데리고 있으면서 그 뒷바라지까지 했었던 황씨. 막내는 고 3이 되던 해 ‘나도 다 컸으니 형도 형의 삶을 찾으라’며 형의 등을 떠밀었고 황씨는 다시 서울의 압연공장을 다니다 수원의 한 철강공장으로 옮겨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누나의 중매로 전기회사를 다니던 아내를 만나 1988년 결혼을 하게 된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이때 만해도 작으나마 재형저축도 가입하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한 순간의 신기루처럼 아련하기만 한 기억이다.

연년생으로 둘째를 임신했던 아내가 출산을 두 달이나 남기고 상당한 하혈을 하고 말았던 것. 인큐베이터에서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둘째와 몸이 상한 아내를 뒷바라지 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스트레스와 고민들이 파도처럼 몰려왔고 안타깝게도 그는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선택을 해버렸다. 

가족들을 돌보지 않고 술에 빠져버린 그는 세상을 포기해버린 것 같았다. 잘 다니던 직장을 나와 방황하던 그는 이후 섬유공장도 잠깐 다니고 타일기술을 배워 시공일을 하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98년의 IMF사태는 아슬하슬 했던 그런 생활조차 너무나 쉽게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이때부터 그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알코올의 심연에 빠지게 됐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를 타락하게 내버려뒀던’ 시기다.

가족들은 결국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3개월, 6개월, 1년이 가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생각보다 훨씬 긴 세월을 그 안에서 보내야 했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아내의 이혼서류. 가족은 벌써 그를 포기한 상태였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그는 세상에서도…

간신히 본인을 추스렀다고 생각하고 생존을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려 마음먹었던 45살 황씨.

목포의 한 금속공장으로의 출근을 이틀 남겨두었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20대 운전자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황씨를 치고 10여 미터를 끌고 간 큰 사고였다. 갈비뼈 5개 골절, 양쪽 어깨 근육 파열 등으로 1년2개월을 입원해야 했던 그는 완전히 근로능력을 잃어버리고 만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다지만 가족에게 버림받은 그는 세상에서도 철저하게 내팽개쳐지고 만다.

“2003년도에 천안으로 왔어요. 천안에서 타일 시공을 했던 인연으로요. 성정동의 한 교회 목사관에서 목사님의 도움으로 몇 달을 생활했어요. 그러다 봉명동에 월세 18만원짜리 방을 얻었고 수급비로 생활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수급비가 이달까지만 나오고 다음달부터는 안된데요.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생활이 너무 어려워져 아픈 몸으로 일용직 노동일을 간혹 했었는데 인력회사의 세금처리 과정에서 의도적인지 아닌지 그가 꽤 많은 소득을 얻는 것으로 처리된 것이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우선 내년 초 다시 시작하는 공공근로를 추천하고 있는 상황.

황씨는 앞으로 남은 기나긴 겨울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부담스럽기만하다.

이진희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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