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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싫어요. 저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희망 2019- 박미경/ 49·가명, 천안시 성정동

등록일 2019년10월08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도미노처럼 안좋은 일들만 벌어지는 현실, 작은 희망은 욕심일른지…

박미경(49·성정동)씨는 요즘 자주 한숨을 쉰다. 청명한 가을하늘을 봐도, 길 가에 핀 예쁜 꽃들을 봐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남들은 모두 즐거운 듯한데, 몸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살아가는게 왜 그리 힘들까. 병원에서는 우울증이라 했다. 즐겁게 살아보려고도 해봤지만 덫에 걸린 토끼처럼 꼼짝도 할 수 없으니…, 어느덧 ‘기구한 팔자’설을 믿게 되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자주 강하게 일고 있다.

 

10년 전 미경씨는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다. 남편이 시비가 붙다 얻어맞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돌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 딸아이는 막 돌을 지나고 있었다. 법에 매달렸는데 지루한 공방 끝에 유야무야 됐다. 집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는 상태랄까, 뭐 그런 상황이 계속 됐고, 저는 피폐해져 가기만 했죠. 남편의 흔적이 머문 곳에서는 더 이상 못살겠더라구요.”

그렇게 훌쩍 천안에 내려왔다. 가진 것이라곤 몇백만원도 안됐다. 겨우 신방동 초원아파트에 월세를 얻었다. ‘모든 것 훌훌 털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다짐했는데, 그게 마음같이 안되는 거였다. 남편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이 자꾸 가슴을 북받치게 했다. 울화가 마음을 좀먹고 있는걸 알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딸아이하고 살아보려 안해본 것이 없어요. 식당일도 하고 파출부도 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딸은 무럭무럭 자라줬고, 어미 눈치를 보며 자란 아이는 세상을 빨리 읽고 속깊게 어미를 이해하고 위안해주는 초등생이 되었다. 약간의 희망이 고개를 드는 때에, 또다시 역경이 찾아왔다. 2016년 화장실에서 잘못 넘어져 인대가 파열된 것이다. 병원치료를 받고 절뚝거리면서도 살 길을 이리저리 모색했다. 얼른 나아야 일을 할 텐데, 2017년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다른쪽 무릎연골이 찢어져 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양쪽을 다 수술하고는 지금껏 잘 걷지도 못하는데 장애는 아니래요. 조금만 걸으면 다리도 아프고 계단은 걷질 못해요. 날씨라도 흐리거나 그러면 쑤시고요.” 그런 다리를 하고서라도 식당 설거지 일을 해보기도 했는데 하루 하면 며칠을 끙끙 앓아누워야 했다.

양쪽 다리가 아프고 잘 걷질 못하니 집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고 스트레스는 더욱 커졌다. “먹는 걸로도 풀고, 집에서 운동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살도 찌고 몸은 점점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요. 나쁜 생각만 자꾸 드는 거 있죠.”

그녀는 독백처럼 두 번의 자살시도를 해보기도 했다고 한다. 베란다 난간에 걸터앉기도 했는데 지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저 사람 왜 저럴까’ 그렇게 보였을 거다. 자살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어색한 시선이 눈에 들어올 리는 없다. 막상 마음을 먹으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무엇보다 학교에 가있는 하나뿐인 딸아이가 걱정이 됐다. 엄마를 끔찍이도 아끼는 착한 아이인데…, 내가 없어지고 나면 그래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직 딸아이가 마음에 걸렸어요. 4층에서 떨어져봤자 죽을 것 같지도 않구요. 아이 때문이라도 좀 더 살아보자 했죠.”

그녀의 무기력증의 원인은 여러 곳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남편 문제로 소송하면서 조금 있던 돈도 없어지고, 생활력도 떨어지다 보니 스스로는 억울해 할 일들이 툭툭 생겨났다. “한번은 큰 마트에 갔더니 카드를 만들 수 있다고 하대요. 카드 만들면 사은품을 많이 준다고요. 그렇게 해서 만들었더니 돈이 궁해지면 카드에 의지하게 되고 어느덧 빚이 1000만원이 넘어가더군요. 뒤늦게 후회하고 방법이 없어 파산신청을 했어요. 핸드폰도 그래요. 잘 알아듣지 못하고 덜컥 샀더니 혼자 쓰는 비용이 15만원쯤 나와요. 아직도 1년 남았네요.”

그런 말을 할 때면 더욱 ‘우울한’ 상태로 떨어져 울먹인다. 딸아이는 아직 어리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하니 바보처럼 살아가는 자신이 밉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학교에 적응 못하는 딸아이가 안타까워 이사가기로 했다. 전에 살던 성정동으로 가면 친구들도 있을 테고, 아이가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어려운 이사결심을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법적으로 여러 도움이 있기는 하지만 이사비용만도 수십만원에 이르고 그쪽 보증금 등 금전적으로 여러 문제가 걸려버렸다. 일단 아는 집안 지인에게 300만원을 겨우 빌렸지만 한 두달 뒤에 갚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도 막막하다.

미경씨는 예전에 잠깐 교회에 다녔는데 그때 마음이 편했다며, 이번에 이사가면 교회에도 다닐 거라 했다.
 

“제가 지금 가장 힘든 때이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생각보다 요리를 잘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음식을 먹고 칭찬하는 분들이 많아요. 당장은 어렵지만 내년이든 내후년이든 창업지원받는 프로그램을 신청해 작은 분식점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체력이 필요하니 살도 좀 빼고 마음가짐도 밝게 갖고, 무엇보다 요리연습도 많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꿈을 이야기할 때는 눈이 반짝반짝 빛났고 목소리도 힘이 들어갔다.

정신분석가 칼 융은 ‘나를 미워하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고, 에릭 프롬은 ‘남만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고 했다. 자기를 사랑해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

“내가 나를 미워한 건 어렸을 때부터였을 거에요. 엄마는 왜그리 모질게도 저를 때렸어요. 나는 내가 왜 맞아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커서 언젠가 엄마한테 따지기도 했죠. ‘엄마, 나 어렸을때 왜 그렇게 날 때렸어’ 하고. 그런 것이 내 삶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봐요.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며 우리아이랑 떨어져 살게 되면서부터 난 또다시 비참해졌구요.”

좋은 일 하나가 웃음을 주고, 다시 좋은 일이 생기는 긍정의 순환을 이제는 맛보고 싶다는 그녀. 행정복지센터에도 찾아가 상담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지도 살펴보고, 생활정보지 등에서 일자리도 알아보고, 병원에서 우울증 상담과 약도 먹고….

“생각해보면 그간 도움만 받고 살아왔어요. 좀 더 열심히 살아서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는 삶을 희망해요. 최근 당뇨도 찾아왔지만 우리 딸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 지면을 통해 많이 도와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우울증이 쉽게 고쳐지진 않겠지만 좀 더 노력하고 살게요.”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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