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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서예가 인영선 ‘별세’

천안예술계 애도의 물결… 서예로 큰 족적 남겨

등록일 2020년05월2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서예가 인영선(74) 선생이 5월18일 밤, 암으로 별세했다.
천안에 ‘이묵서회(以墨書會)’를 연 지 48년. 붓으로 그를 이길 자, 전국에 있었을까. ‘겸손의 미덕’으로 조용히 먹을 갈았지만 2014년 세상은 그에게 ‘일중서예대상’을 쥐어주었다. 이병석 시인은 “천안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천안의 별이 된 취묵헌

취묵헌(醉墨軒) 인영선 선생은 1946년에 아산에서 태어났다. 한문서당을 경영한 아버지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익히게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국전에까지 출품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상당한 재능이 있다고 하였지만 숨은 노력을 알 리 있겠는가. 신문이나 잡지에서 서예가의 작품은 스크랩하여 탐구했고, 역대 국전도록도 꼭 사서 연구했다. 전국의 서예전마다 부지런히 찾아가 감상하며, 일체 독학으로 정진했다.

1972년 ROTC 장교로 제대 후 결혼해 아산에서 천안으로 분가하며 ‘천안사람’이 되었다. ‘이묵서회’란 서실도 이때 열고 지금껏 50년 가까이 수강생을 가르쳤다. 당시 지방에는 서실이 없던 시절로, 천안에서 서실경영의 첫 효시가 되었다.

1975년 충남도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지만 서예등용문인 국전에는 10년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독학으로 관문뚫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폐단이 너무 깊었다. 1976년 공개심사제로 바뀌면서 관문을 통과했고 이후 매년 국전에 입선하는 영예를 가졌다. 국전이 폐지된 1981년부터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 ‘근역서가회’에 가입됐다. 그리고 2014년 국내에서 가장 큰 상인 ‘일중서예상’의 4번째 수상자가 됐다.

인영선 선생은 평소 ‘끝까지 가봐야 끝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쉬면서 가더라도 끝까지 가볼 일이다’라며 ‘취묵헌’이란 자호답게 평생 서예가로서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의 서실에는 정희성 시인의 ‘한거(寒居)’가 쓰여있다. 그중 <몸 이긴 마음이 어디 있을까>를 짚으며, “이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라고 했다. 결국 붓을 잡고 싶어도 병을 이기지 못했으니 자신의 미래를 알았을까.

천안 예술계를 비롯해 그를 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젖었다. 애도의 시간은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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