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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원 수필가의 '첫눈 오는 날'

등록일 2020년12월03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새로운 것 앞에선 늘 두렵다. 사랑도 그런가?
눈이 오기 전에 구름이 하늘을 덮듯 그와 나 사이에도 전조가 있었다. 첫 학교 옆에 하숙집을 잡았다. 몇 년 사용하다 버릴 옷장을 나무로 된 것으로 살 이유가 없었다. 비닐 옷장을 사서 시장을 나오는 길에 그를 만났다.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총각 선생님이었다. 내 짐을 보자 버스정류장까지 짐을 옮겨 주겠다고 했다. 조금 멈칫했으나 마다할 처지가 못 되었다. 무거운 가방에다 비닐 옷장은 부피가 컸다. 그는 버스에 올라 안전하게 옮겨주고 갔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11월의 첫눈은 내려앉기 미안한 듯 신작로에 살포시 깔렸다. 까치발로 조심조심 다가오는 아이처럼. 그도 그렇게 내 옆에 섰다. 다른 학교로 발령을 받아 새로 출근할 학교를 확인하러 가는 날, 제대로 가고 있는지 두근거리는 마음 옆에서 그는 흑기사처럼 버스기사에게 00학교 앞에서 내려달라고 연거푸 말했다. 하얀 눈에 첫 발자국을 찍었던 추억처럼 남은 장면이다.
그는 우리가 데이트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볼까봐 신경썼다. 만일 결혼을 안 할 경우 남자는 별일 아니지만, 여자인 경우엔 조신하지 않은 여자라고 뒷말 들을 것을 염려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말 한마디에서도 나를 배려하는 그에게 마음이 갔으나 또 다른 사람이 올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을 장소를 찾아간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발걸음을 옮긴 것인지 알 수 없다. 첫눈이 폴폴 날리는 망향의동산은 쓸쓸하고 추웠다. 앞서 천천히 걷던 그가 돌아서며 내 손을 잡았다. 반지도 없었고 무릎도 꿇지 않았다. 그러나 진지한 그의 눈동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 위엔 아이들 발자국과 내 발자국이 그의 옆에 어수선하게 있다. 그리고 자전거 바퀴가 낸 완만한 곡선이 아름다운 그림인 양 그 위를 지났다. 삶으로 그리는 그림은 거짓이 없다. 아이들의 발자국은 커졌고 자전거 바퀴는 자동차 바퀴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멀리 갔다.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도 드물어졌다.
 


 

이제 그의 발자국이 더는 눈 위에 찍히지 않는다. 함박눈이 그의 발자국을 덮었다가 햇살이 물기마저 하늘로 가져갔다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던 아이들이 아버지가 되고, 그 뒤를 아장아장 걸음이 뒤따른다. 또다시 세발자전거는 눈 위에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고 나는 그 그림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12월이다.
하늘은 구름을 만들고 머지않아 첫눈이 올 것이다. 눈이 오면 그대와 걷던 발자국을 찾아 버스를 타고 싶다. 기사에게 정중하게 내릴 곳을 확인하던 그의 음성을 안고 그같이 물어보고 싶다. 그를 안고 가는 길 내내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흐느끼는 울음이 눈으로 변하여 길을 가리도록 내렸으면 좋겠다.


 

시인 김다원(64)은 역사를 전공한 교사출신으로, ‘허난설헌 문학상’과 ‘천안시 문화공로상’을 받았다. 지금은 천안수필문학회 회장이자 충남문인협회 이사, ‘수필과 비평’ 충남지부장을 맡고 있다. 시인으로서의 그는 첫시집 ‘다원의 아침’에 이어 ‘천안삼거리’, ‘보내지 않은 이별’을 펴냈다.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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