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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많은 것을 느낀 날

조재도 작가

등록일 2021년04월1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오늘도 ‘파리’(우리동네 빵집 파리바게트)에 갔다.

지난 여름(2016) 피서를 목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지금은 하루일과를 끝내고 거의 빠짐없이 가는 곳이 되었다.

나의 하루일과는 오후 4-5시쯤 끝난다.

저녁 산책 겸 집을 나선다. 파리까지는 15분 정도 걸린다. 파리는 내가 사는 동네(안서동)의 최고 번화가에 있다. 파리 주변에 대학만 세 군데 있다. 천안 호서대, 상명대, 백석대 .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단국대까지 하면 네 군데다. 

은행도 있고 술집도 있고 식당도 있다. 붕 붕 차도 많이 다닌다. 방학하면 학생들이 빠져나가 썰렁하지만 학기중엔 사람들로 거리가 붐빈다. 나는 이 흥성거림이 좋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 좋다. 그들은 오뉴월 쏟아지는 햇살을 뒤퉁기며 반짝이는 푸른 나뭇잎처럼  신선한 기운을 쏟아낸다.

파리에서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멍 때리는 일이다.

원래 빵만 팔던 곳인데, 일이 년 전부터 내부를 확장하여 차도 팔고 빵도 판다. 내부가 넓고 인테리어가 자못 세련됐다. 내 자리는 늘 정해져 있다. 창가 그 자리다.

2000원 하는 커피(그래서인지 맛은 별로다)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밖을 구경한다.

오가는 사람들. 빵을 사는 사람들. 사람을 구경한다. 빛과 어둠이 섞이는 어스름 속 이렇게 긴장을 풀고 여유 있게 있는 시간이 나는 좋다.

좋은 생각은 이때 많이 떠오른다. 메모지에 몇 줄 적는다. 그렇게 있는다.

먼 바다, 움직이지 않는 배처럼. 따뜻한 물에 몸을 담궜을 때처럼.

 

빵집 앞 도로 변에 승용차 한 대가 섰다. 흰색 아반떼였다. 그곳에 차를 주차시키면 주차 위반 단속인데 모르는 것 같았다. 차 문이 열리고 넷이 차에서 내렸다.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두 아이가 깡총깡총 뛰었다.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아까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매장에서 두 아이는 신이 났다. 언니는 대여섯 살 동생은 서너 살 정도. 엄마 아빠가 빵을 고르는 동안 두 아이는 매장 여기저기를 뛰며 놀았다.

빵을 산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차 문이 열리고 엄마가 아이들과 뒤에 타고 아빠가 운전석에 탔다. 차가 떠나지 않았다. 떠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운전석에서 아빠가 내리더니 트렁크에서 어린이용 시트를 꺼내왔다. 의자에 시트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차 문을 열고 작업하는 남자의 엉덩이와 다리만 보였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나는 상상했다. 뒷좌석에 앉은 꼬마가 앞에 앉겠다고 떼를 쓰고, 엄마가 거긴 위험하니 그냥 뒤에 앉아 가자고 했고, 그런데도 꼬맹이는 막무가내로 떼를 썼고. 한동안 달랬지만 소용없자, 아빠가, 여보, 애들 시트 어디 있지?, 물었을 테고, 뒤 트렁크에 있지 않나, 대답했을 테고, 아빠가 차에서 내려 시트를 가져오고….

시트 장착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남자는 차 속에 상체를 구부려 넣은 채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20분 넘게 작업한 후 남자가 꼬맹이를 안아다 앞좌석에 앉혔다. 이윽고 차가 떠났다.

차가 떠난 빈자리를 응시하는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콧잔등이 시큰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저게 행복이 아닐까? 저게 평화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갈마들었다.

어린 아이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무지르지 않고, 아이를 위해 20분 넘게 길에서 시트를 장착한 아빠.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말로만 글로만 그럴 듯했다.

실로 많은 것을 느낀 날이다.

 

조재도 | 시인이자 아동·청소년문학 작가입니다. 충남의 여러 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평화모임’ 일을 하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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