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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게 펼쳐진 밀밭길을 가노라면

천안 굴울마을 밀밭, 영화 속 장면처럼 산책코스로

등록일 2021년05월2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밀밭을 찾아가는 걸음이 가볍다.

길을 그냥 가는 법이 없다. 발은 땅을 가지만 눈은 사방으로 열린다.

“저건 뽕나무, 요건 감자꽃, 저기 저 집 담장에 장미색이 참 예쁘다 주황색 장미라니, 아공! 요건 엉겅퀴네.”
 

▲ 사진의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진면가'다.


이슬이 내린 풀잎에 햇살이 비쳤다.

예식장 ‘베리’는 아직도 잠자는 중이고 언덕 꼭대기에 ‘핀스커피’집은 부산하게 아침을 준비 중이다. ‘핀스’로 오르기 전에 밀 전문음식점 ‘진면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밀밭으로 들어가는 안내문이 있다. 
 
밀밭 입구에 서자 걸음이 먼저 서두른다. 서두르는 마음을 시 한 편이 잡아 앉혔다.

심호택 시인의 시 ‘호밀밭 모퉁이’다.


나 먼저 집에 돌아온 날은
서둘러 밥 먹고 호밀밭가에 나가서서
그 애 지나가는 것 지켜보았습니다

먼 철둑길 아지랑이 속에
나비 하나 가물거리다 마을로 들어오면서
점점 황홀하게 그 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 애의 하얀 교복을 에워싸고
까닭 모를 행복의 치장으로 차려입던
그 푸르른 우주에 가득하던 밀 익는 향내

취하여 뛰노는 맥박을 감당하느라
밀모가지 물결치는 밭고랑 저편
쓰라린 내일의 발자국 소리도 놓쳤습니다

 

맑은 물 흐르는 냇물에 햇살이 일렁이면 가슴도 울렁거리던 시절, 바람 따라 흔들리는 밀밭은 유혹이었다.

그대의 향에 취하고 밀 익는 향에 취해 폭삭 쓰러지고 싶던 밀밭이다. 그 밀밭이 천안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 굴울마을(구성동 128-10)에 밀이 익고 있다.

자그마치 10ha다.
 

이곳에 들어서면 빨리 걸을 이유가 없다.

두 팔을 벌리고 초록의 물결에 시린 듯 눈을 감는다. 김동환의 시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를 되풀이 하며 사부작 사부작 밀밭 속을 거닌다. 밀밭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 어머니는 국수를 참 잘 만드셨어. 칼국수를 하려고 홍두깨로 밀반죽을 밀면 맷방석만하게 되었지. 국수가 얼마나 길었던지 한 가닥을 젓가락으로 집으면 그릇에 가득 찼어.”

금방 따온 애호박을 볶아 칼국수에 얹어 먹으며 하시던 말씀이다.

나도 국수를 만드는데 거들었다. 통밀을 종이부대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갔다.

방앗간에 도착하면 우선 밀을 가루로 빻아 반죽을 했다. 국수틀에 넣어 가닥가닥 나온 국수를 대나무에 걸어 햇살에 말렸다.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저녁때나 되어 국수가 마르면 적당하게 잘라 종이에 싸서 국수덩이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마른 국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만든 육수와 잘 맞았다.

그 맛을 못 잊어 지금도 찾아다닌다.
 

팔랑거리는 나비 한 마리를 쫓다가 보니 밀밭 끝에 정자가 보인다. 사람들은 정자에 앉아 휴식도 취하고 물도 마신다.

앞으로 6월 말이면 밀이 다 익을 것이다. 누렇게 익은 밀밭을 자주 그린 화가가 생각난다. ‘반 고흐’다.
 

▲ 책 속의 고흐 밀밭 그림들.


‘밀밭 풍경’ ‘수확, 몽마주르를 배경으로’, ‘해뜰 무렵 밀밭에서 수확하는 사람’, ‘까마귀 나는 밀밭’의 노란색이 고흐의 자화상에도 들어있다.

누렇게 익어 풍족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을 그림에 넣고 싶었던가?

그러고 보니 밀을 수확하는 것을 본지가 50년이 넘는 것 같다. 봄이면 밭마다 일렁이던 청보리와 옥색의 호밀밭은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말한다.

“한국 전쟁 후 미국이 밀가루를 무상으로 주었고 그냥 얻다보니 밀을 재배할 이유가 없어졌다. 한국에서 밀 재배가 사라진 후 미국은 한국에 밀가루를 팔았다. 그 후 우리는 싼 밀가루 맛에 들려 재배를 잊은 것이다.”
 

지방자치제 이후 각 지방의 특색있는 사업을 많이 본다. 유채, 해바라기, 핑크뮬리, 메밀, 청보리, 밀 등이 눈길을 끈다.

밀이 익으면 시민들이 모여 일을 수확하는 재미를 누렸으면 좋겠다. 수확을 마치면 너른 주차장에 모여 홍두깨로 밀어 국수를 만들고 그 국수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보는 재미에 더해 만들고 나누는 재미를 함께 한다면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더 만드는 것 아닌가?

밀을 수확한 후엔 메밀을 심는단다. 가을이면 보름달 아래 눈이 내린 듯 메밀꽃이 하얗게 피리라. 그때 메밀꽃을 보면서 함박웃음 하늘로 올리고 싶다.

그대와 함께라면 더욱 큰 소리로.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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