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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지로의 ‘러브레터’를 읽고

<김다원 서평> 생의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 슬픔과 아픔 한조각

등록일 2021년05월27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철도원』에 있는 단편소설 ‘러브레터’를 본다. 한국배우 최민식과 중국배우 장백지가 주인공이었던 국내영화 ‘파이란’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바게트빵 같은 사람, 겉은 딱딱하여 얼굴을 찡그리며 이로 찢지만 속은 보드라운 바게트 빵 같은 사람인 남자 주인공 ‘고로’는 하급 야쿠자로 직업은 포르노숍 전무다.

불법비디오를 팔다가 들켜서 열흘 구류를 살고 나온 날 아내가 죽었다는 연락이 왔다. 중국에서 일하러 온 여자와 위장결혼을 했는데 남편이니 시신을 인계받으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갔다.

한번도 보지 못하고 안아보지 못한 아내다. 그는 여자가 살던 집에서 자기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했다.
 

다카노 고로님께
어제 아침, 갑자기 배가 아파서 구급차로 병원 왔습니다. 손님은 보낸 뒤니까 괜찮습니다. 호텔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급차가 왔습니다. 굉장히 나쁜 것 같아서 중국의 우리 집에, 그리고 고로씨에게 편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밤중에 살짝 쓰고 있습니다. 아파서 잠이 안 와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일은 이제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밤 살짝 쓰고 있습니다.
결혼, 고맙습니다. 셰셰
10월, 12월, 출입국 관리청에도 경찰서에도 잡혀가지 않았습니다. 계속 일했습니다.
이곳은 모두 친절합니다. 조직사람도 손님도 모두 친절합니다. 바다도 산도 아름답고 친절합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싫습니다. 셰셰. 그것뿐입니다. 바닷소리가 들립니다. 고로씨, 들리십니까?
모두 친절합니다. 하지만 고로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었으니까요.
셰셰, 많이 셰셰. 안녕히 주무세요..
파이란.

 

아내 이름이 파이란이었다.

일본에 같이 왔던 두 여자는 중국으로 추방되었는데 파이란은 고로와 결혼했기 때문에 남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성 간염을 앓고 있지만 그런 여자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병원에 가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너무 쉽게 수속을 마치고 병원에서 시신을 인계받은 그는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싶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 이게 명백한 관리매춘 아냐? 게다가 불법취업 아니냐구. 납치·감금 아니냔 말야. 제 발로 찾아오는 것도 그렇고, 그런 손님에게 음란비디오 팔았다고 열흘씩이나 콩밥신세를 지는 판인데, 어째서 이 일에는 모두들 태연하게 책상다리를 꼬고 있어? 우리가 모두 함께 공모해서 그 여자를 죽인 게 아니냐, 그 말이야.”

병원에서 고로는 싸늘하게 굳어버린 파이란을 안고 통곡했다. 자신의 아내라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그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선 고향이다. 파이란과 아이들을 낳고 살다가 파이란이 죽었다. 꿈에서도 죽은 그녀가 같은 말을 했다.
 


“고마워요, 고로씨. 저, 이제 괜찮아요. 손님들 다 친절하지만 고로씨가 제일 친절해요. 나하고 결혼해 주었으니까요.”
고로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뭐가 친절하다는 거야. 친절하기는커녕 야쿠자, 경찰, 손님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너를 괴롭혔는데. 그중에서 제일 지독한 놈이 나야. 오심만에 호적 팔아먹고, 그 돈 어쨌는 줄 아니? 사흘만에 다 써버렸어. 당신 몸으로 갚아야 하는 그 돈을 말야. 피를 토하며 갚아야 하는 그 돈을 말야. 우린 전부 거머리들이야. 찰거머리들이야. 당신을 뼈만 남도록 빨아먹는 귀신이야. 어째서 이 찰거머리 귀신들에게 자꾸만 친절하다고, 고맙다고 그런 말을 하니?”

아무 말 없는 꽃을 흙덩어리째로 품어안고, 고로는 가슴속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제 일 같은 거 안 해도 돼. 파이란, 나랑 결혼해 줘.

꿈을 깬 그는 병원에서 준 유품 속에서 마지막 편지를 발견했다. 꼭꼭 접은 편지지를 펼쳤다. 어제의 편지와는 다른, 가늘고 흐트러진 글씨가 물빛 종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고로씨에게.
아무도 없는 사이에 살짝 편지쓰고 있습니다. 누운 채로, 한쪽 손으로, 서투른 글씨 미안합니다. 나는 분명 죽습니다. 고로씨에 대해 나 잘 압니다. 경찰이나 출입국 관리청에 잡혀갔을 때를 대비해 주소라든가 나이, 성격, 버릇,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 사다께 사장님이 적어준 것 전부 외웠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게 날마다 읽었습니다.
사진도 갖고 있습니다. 같은 거 넉 장입니다.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잊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고로씨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좋아지면 일하기가 괴로워집니다. 일하러 가기 전에 항상 미안합니다 말합니다. 하는 수 없지만, 미안합니다 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갚으면 고로씨하고 만날 수 있을까요. 고로씨랑 함께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안 됩니다.
고로씨, 항상 벙실벙실 웃고 있습니다. 담배 안 피웁니다. 술 조금 마십니다. 싸움하지 않습니다. 고기 싫어하고 생선 좋아하지요. 그래서 나도 담배 끊었습니다. 술도 조금, 고기 안 먹고 생선 먹습니다.
손님들 모두 친절하지만, 일하면서 고로씨 잊지 않습니다. 진짜입니다. 손님을 고로씨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되어서 손님이 기뻐합니다.
바닷소리 들립니다. 비 옵니다. 아주 캄캄합니다. 누운 채, 손 한쪽으로만, 서투른 글씨 미안합니다. 고로씨가 정말 좋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누구보다 고로씨가 좋습니다. 아픈 거, 괴로운 거, 무서운 거가 아니라 고로씨를 생각해서 울고 있습니다. 매일 밤 잠들때 꼭 그랬던 것처럼 고로씨 사진 보면서 울고 있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친절한 고로씨 사진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슬픈 거, 괴로운 거가 아니고 고맙다로 눈물 나옵니다.
고로씨에게 드리는 거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말만, 서투른 글씨로,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누구보다.
고로씨 고로씨 고로씨 고로씨 고로씨 고로씨 고로씨 짜이젠. 안녕.

 


편지를 읽으며 통곡하는 고로에게 함께 갔던 사토시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자 고로가 소리를 지른다.

“제정신이다. 나는 아주 말짱해. 너희가 모두 제정신이 아니지.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전부 제정신들이 아니라구.”
그리고 유골함을 다독거리며 말한다.

“고향에 돌아가자, 파이란. 다들 기다리니까, 응?” 그리고 유골함에 그녀의 붉은 립스틱으로 ‘다카노 파이란’이라고 썼다.

 
▲ 아사다지로의 단편소설집 '철도원'에는 영화로 유명한 '러브레터'와 다른 내용의 '러브레터'가 담겨있다.


작가가 이런 야쿠자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한때 야쿠자로 살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이 파이란의 유골함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장면이 마지막이다. 사기와 납치가 난무하고 인간성을 찾기 어려운 도시를 떠나 돌아갈 고향을 언급했다. 돌아가면 반길 형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여자들이 오늘도 배를 타고, 혹은 비행기를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오늘 우리의 파이란은 어디서 어떻게 울다 잠이 들었을까? 언제까지 우리는 파이란을 보아야 할까.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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