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서리에 대한' 추억 한자락

서리 내린 들녘, 선생님께 빰맞은 어린 소녀의 아린 기억

등록일 2021년11월0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머리에 서리 내린 담임선생님이 소녀의 뺨을 때렸다.

초등학교 3학년, ‘순딩이’란 말을 자주 듣는 편인데 무슨 일인지 숙제를 못 해가서 처음 뺨을 맞았다.

머리가 휙 돌아가며 정신이 아득했다.

그 순간 아픈 것보다 농사 일로 바쁜 엄마를 생각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풀었다. 오늘 잘 견디면 내일은 손바닥 자국이 없어지려나.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밖에 나가 놀다가 어두워져서 돌아왔다. 공부를 핑계로 등잔불 앞에 앉았다. 엄마는 내 등만 보니 괜찮다.

다음에 또 맞으면 어쩌나 걱정과 선생님의 째진 눈이 자꾸 떠올라 잠을 설친 다음 날, 서리가 왔다.
 

학교 가는 걸음이 천근이다. 길섶 풀에 앉은 물방울에 바지가 젖으니 더 무겁다. 몇 걸음 가다가 쪼그리고 앉아 벼 벤 논을 본다. 하얗게 내린 서리에 마음이 시리다.

버석버석 발이 닿는 곳마다 소리도 춥다. 논둑을 지나고 숲길을 지나 신작로를 따라가면 학교가 있다. 가도 가도 학교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고향에 들렀더니 그 선생님은 경운기 타고 가다 깊은 냇물로 떨어져 돌아가셨단다.

누구는 술에 취해서라고 했다.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뺨 한 대의 기억이 그리 깊다니.

가슴에 내린 서리는 녹기가 쉽지 않은가보다. 여리디 여린 잎에 내린 서리는.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