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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청당동 법원 뒷산에 '5월이 오면'

송홧가루 속에 청미래덩굴 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등록일 2022년05월1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5월의 숲에 들어서면 기분이 좋다.

햇살에 반짝거리는 잎이 바람이라도 만나면 사탕 사준다는 엄마를 따라나선 아이처럼 신나게 잎을 흔든다.
 

신발 바닥에 깔기 좋다는 신갈나무 잎에 송홧가루가 노랗게 앉았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시가 절로 나온다. 모내기하려고 논에 물을 가두면 노란 송홧가루가 앉는다. 바람은 그냥 있지 않고 물을 흔들어 고구려의 수렵도에 나오는 산을 그려놓았다. 

잔치나 제사가 있으면 송화다식을 빚었다. 송홧가루를 모아 꿀에 반죽해서 만든 다식이다. 노란 송화다식을 입에 넣으면 달곰한 맛이 혀에 닿았다가 녹듯이 사라진다. 아까워 조금씩 떼어 입에 넣고 천천히 풀어지는 대로 먹었다. 
 

몇 걸음 앞에 청미래덩굴 여린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보는 순간 맹감떡이 생각난다. 청미래덩굴은 지역에 따라 멍가, 망개, 맹감 등으로 이름이 다르다.

“맹감 떠어억” 하고 길게 소리치면 얼른 나가서 맹감잎에 싼 찹쌀떡을 샀다. 찰지고 보드라운 떡 속엔 단 팥소가 들어 있었다. 맹감 잎에 싸면 잘 상하지 않고 은은한 향이 밴다. 잎을 걷어내며 먹는 즐거움도 맹감떡을 먹는 재미다. 

맹감 뿌리가 토복룡이다. 맛이 달콤하고 텁텁한데 체내의 중금속을 해독하는 작용을 해서 한약 재료로 많이 쓴다. 잎은 말려서 차로 마신다.

빨간 열매와 줄기의 선이 예뻐서 꺾꽂이 재료로 많이 쓴다. 빨갛게 익은 맹감열매 두어 가지 꺾어 나뭇짐 위에 얹어오던 머슴이 생각난다. 키 작은 아이는 보석이라도 되는 양 빨간 열매를 만지며 좋아했다. 
 

와! 눈이 내렸나 5월에? 숲길이 온통 하얗다. 은사시나무 씨다. 솜이 뭉텅이로 나뒹구는 듯하다. 버드나뭇과라서 씨앗의 모양이 버드나무와 비슷하다. 털에 씨앗을 싸서 바람에 날려 먼 곳에까지 종족을 번식하려는 전략이다. 

나무 둥치가 자작나무처럼 희다. 자작나무는 둥치 전체가 희고 껍질이 옆으로 찢어진다면 은사시나무는 나무가 자랄수록 둥치 아래는 검어진다.

미루나무나 자작나무처럼 바람이 불면 잎이 사정없이 팔랑거린다. 잎자루가 길기 때문이다. 잎 뒷면이 은색의 솜털로 덮여 바람에 잎이 뒤집히면 나무 전체가 은색처럼 보인다. 
 

양지바른 곳에 노란색 꽃이 예쁘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본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니 한참을 볼 수 있다.

꽃대나 줄기를 자르면 끝에 노란 물이 맺혀서 ‘애기똥풀’이란 이름을 얻었다. 찔레꽃도 하얗게 피었다. 향기가 은은하다. 장미과 아닌가. 향수의 원료로 쓴단다.
 

찔레 순을 보고 그냥 갈 수가 없다. 어린 찔레 순은 단맛이 난다. 찔레꽃을 먹었다는 노래를 들은 후 찔레꽃의 맛이 궁금했다. 살짝 시고 쌉싸름하고 끝에 단맛이 난다. 그 여린 잎을 얼마나 먹어야 배가 부를까. 찔레 어린 순은 나물로, 차로 먹는다니 시도해볼 일이다. 
 

앗! 상수리 어린 가지가 잘려 땅에 떨어졌다. 태풍도 불지 않았는데 왜 가지가 잘렸을까?

도토리거위벌레 짓이다. 주둥이가 전체 몸길이의 반 가까이 되는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에 알을 낳고 유충은 그 열매를 먹으며 성장한다. 애벌레가 땅으로 내려와 땅속에 흙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데 나무에서 내려오려면 긴 시간이 걸리고 또 새들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막으려 어미는 상수리가 달린 나뭇잎 가지를 자르는 것이다. 

애벌레가 들어있는 상수리만 떨어뜨리면 충격이 크니 나뭇잎이 달린 채로 자른다. 충격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그런데 상수리가 달리려면 7~ 9월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벌써? 곤충들도 돌연변이가 있거나 기후변화로 더위 먹은 것이 있나 보다. 아니면 그들도 사춘기가 있어 제멋대로 해 보는가?   
 

흠 흠, 달콤한 향기가 짙게 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코를 깊이 들이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아카시 꽃이 만발했다.

막 피기 시작한 아카시 꽃을 한 송이 따서 꽃잎을 하나씩 떼어 먹으며 걷는다. 송이채 먹기도 한다. 아카시 꽃을 튀기거나 전을 한다는 말에 밀가루를 묻혀서 튀김을 했더니 달곰하고 보드라웠다. 꿀이 많아 밀원식물이다. 잎엔 영양이 많아 동물의 사료로 많이 쓴다.
 

아카시 나무는 억울하다. 벌거숭이산에 빨리 자라는 나무라서 심었더니 너무 빨리 번져서 다른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오명을 썼다.

그러나 이 나무는 수명이 보통 30-50년이다. 아주 길어야 100년이다. 콩과식물이라 뿌리에서 질소를 만들어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가을에 꼬투리를 갈라보면 작은 콩 같은 씨앗이 들어있다.   

산소 주변에 난 이 나무를 제거하다 가시에 찔려 ‘아! 까시야,’ 란 말이 절로 나왔다 해서 ‘아까시야 나무’라고도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짐승이나 사람으로부터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둥치가 커지면 가시를 다 내린다.

생존의 전략이니 가시가 많다고 어찌 나무랄 수 있나. 장미 가시보다 더 강해서 등산용 신발을 뚫기도 한다니 조심은 해야겠다.  
 

사위질빵 덩굴이 나무를 향해 줄기를 벋고 있다. 사위질빵이란 이름이 재미있다.

‘옛날 풍습에 가을걷이 때가 되면 사위가 처가에 일을 거들러 갔다. 사위를 아끼는 장모가 사위질빵 줄기를 잘라서 지게 끈으로 만들어 주었다. 사위질빵 끈이 약하니 무거운 것을 질 수가 없도록 한 장모의 배려다.’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 배꼽, 며느리밥풀, 며느리주머니 등 ‘며느리’가 들어간 것은 많은데 ‘사위’라는 말이 들어간 유일한 식물이다. 으아리꽃처럼 하얗고 청초한 꽃이 참 예쁘게 필 때 다시 봐야겠다. 
 

작은 공터만 있으면 새싹이 올라온다. 상수리 소나무 산딸기 고사리, 먼저 자리 잡으려고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한다.

산불이 나면 조림을 할 것인가 자연 복원으로 둘 것인가 논란이 있다. 연구에 의하면 자연으로 두는 것이 숲을 더 울창하게 한단다. 경제 목으로 할 요량이 아니고 숲의 복원에 목적을 둔다면 그저 놔두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다.

그들의 생명력을 생각할 때 아이들에 대한 과한 염려도 접어야 할 듯하다. 
 

나무는 죽어서도 참 많이 쓰인다.

거름으로 기둥목으로 아이들 놀이터로 버섯이나 곤충의 먹이로 이식한 나무의 뿌리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지지대로, 그런데 잘린 소나무 둥치에서 어린 솔잎이 나오고 있다.

마지막 남은 기운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저 열정과 인내와 고집이다.

둥치가 잘렸어도 뿌리가 살아있는 것은 새싹을 키우느라 애를 쓴다. 하나로는 안 되겠다는 듯이 우북하게 싹을 틔웠다. 

숲에서 그저 나무와 잎만 보는가? 생명의 신비도 보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듣자.   



 

김다원 리포터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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