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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도 열심히 죽어갑니다”

사람들과 상생하는 관계 꿈꾸는 도심 속 나무들

등록일 2022년06월25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도심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또다른 ‘투쟁’입니다. 사람이 다니기 어려운 인도의 문제, 골목길에서도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위협,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드셨나 생각되는 경적소리, 각종 매연에 불법주차로 인한 여러 불편들... 어디 이기적인 상태와 상황들이 한두 군데이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못살겠다 하는 도심에서 사람 때문에 치이는 나무들은 또 어떠합니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사람들조차 가증스러울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천안 쌍용동 한 초등학교 울타리에 사는 나무를 보십시오. 
 

철제울타리와 나무가 ‘사이좋게’ 서있습니다. 누가 터줏대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철제울타리가 쳐진 다음 나무가 뿌리내려 자랐는지, 나무가 자라는 사이에 철제울타리가 쳐졌는지는. 다만 철제울타리가 쳐진 곳에 나무를 심을 까닭이 없으므로, 철제울타리가 쳐질 때 나무는 작았을 것이라는 가벼운 추측만 할 뿐입니다. 
 

문제는 나무가 자라면서 철제울타리와 생존의 투쟁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자라면서 또한 둥치도 커지는 것이기에 고정된 철제울타리와 자리싸움이 필연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나무가 스스로 피해 자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똑바로 자라는 나무의 특성 때문에 둘은 이웃사촌이 아닌, ‘웬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철제울타리에 끼인 나무를 보면서 지나다니는 초등학생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나무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아이도 있을텐데요. 학교측은 울타리를 치우든 나무를 옮기든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배움’의 장소로 부각시키는 것은 어떻겠나요. 

나무 또한 저로 인해 사람들에게 좋은 배움을 줄 수 있다면 감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는 남으로부터 조금의 고통만 느껴도 못견뎌하는데, 죄없는 어린 나무는 잘도 참아내는가 봅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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