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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녘 ‘천흥저수지’… 사색의 공간

호젓한 호수둘레길에서 낭만이 아지랑이처럼 

등록일 2023년02월21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김동명의 시 ‘내 마음은’ 중에서

 


시는 내 마음이 ‘호수’에서 멈추지 않는다. 촛불, 나그네, 낙엽으로 이어진다. 

천안에서 시 속 풍경을 잘 나타내주는 곳이 어딜까.

둘레길과 경관조명(촛불)이 설치된, 내가 아는 어느 호숫가, 산 아래로부터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원초적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나그네’가 되어 호젓이 그 길을 걷고 싶다. 
 

가만 바라만 봐도 좋은 ‘호수’가 있다.

그런 호수가 천안에도 있다. ‘천흥저수지’는 천안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곳이지만 호수의 풍경이 자아내는 낭만을 아직 잘 모르는, 도심사람들에게 그곳은 아직 원석(原石)으로 있다.

특히 안개 낀 늦가을의 정취란!
 

천흥저수지 생김새가 민달팽이를 닮았다.

체스를 좋아하는 서양인이 본다면 체스판 위의 ‘말(용감한 기사)’을 닮았다고 할 것이지만 우리 정서에는 꼭 ‘집 없는 민달팽이’ 같다.

성거산(聖居山·579m)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 모여든 곳, 그래서인지 천안의 다른 호수둘레길보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깊어진다. 걷다보면 심념(心念)이 시나브로 깨끗해지고, 구겨졌던 얼굴 주름도 펴지는 곳. 

특히 오뉴월에는 천흥저수지 주변에 황금빛 세상이 열린다. 둑을 따라 황금빛 금계국이 만개해 온통 노오란 풍경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노란 단풍에 물든 가을녘을 연상시킨다. 그때가 되면 도심 멀리에서부터 가족끼리, 연인끼리 천흥저수지를 찾는다. 금계국을 위해 온 것이지만 더불어 천흥저수지의 존재감을 살며시 보여줄 수 있는 시기이다.  

천흥저수지 일대는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 기운이 서려있는 곳이다. 후백제와 국경을 이루는 천안을 자주 찾아 그 흔적이 곳곳에 있다. 특히 천흥저수지쪽은 산 정상에 오색구름이 감싸고 있는 것을 보고 태조 왕건이 ‘성거산(聖居山·성인이 사는 산)’이라 이름짓기도 했다. 
 

▲ 천흥사지 일대.

▲ 천흥사 당간지주. 당간지주의 크기로 볼때 천흥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왕건은 천안을 발판으로 삼아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천안(天安)’이 하늘아래 평안한 곳이 되기를 희망하며 지어진 이름이라 할 때 인근 ‘천흥사(天興寺)’ 또한 천하가 평안해졌으니 이제는 흥해야 한다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 아닐까 싶다. 천흥사는 왕건 손자인 현종 때에 만들어졌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천흥사는 16세기 이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천흥사 동종(국보)’을 천안에 남겨줬다.

천흥사의 유물인 금동관음보살입상과 천흥사명동종(天興寺銘銅鐘)에는 ‘통화(統和)’라는 연호가 새겨있어 11세기 초에 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5층석탑(보물)과 당간지주(보물)가 당시 역사의 한 자락을 보여주고 있다. 

천흥저수지에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맛볼 일이다. 깊어가는 가을, 안개 낀 호수둘레길에서 호젓하게 ‘시’라도 낭송하며, 툴레툴레 걸어볼 일이다. 


▲ 가을호수. 한참을 바라봐도 더 바라보고 싶어지는...

▲ 호수둘레길이 생기면서 찾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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