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맨위로

추억의 돌절구

마음의 풍요 부르던 절구질 소리, 이제는 아득한 그리움 

등록일 2023년05월10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인터넷을 보다 보니 ‘돌절구’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시골에 있는 돌절구를 누군가 훔쳐갔다며, 어디 가야 살 수 있냐고 묻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돌절구와 관련해, 작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명절때면 으레 전라도에 위치한 선산을 가는데, 거기서 가까운 아버지 고향에 들르곤 했다. 
그곳은 마늘농사를 주로 지으며 사는 전형적인 시골로, 개그맨 김병만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기도 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어릴 적 사셨던 집을 찾아갔다. 초가집에 방 두칸이 나란히 있고 작은 마당 건너편에 창고와 외양간이 붙어있었는데, 오랫동안 폐가로 있어서인지 온통 잡풀들이 자라 사람 출입을 불허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작은형과 나는 마당 한 켠에 있던 ‘돌절구’에 관심이 갔다. 특히 예전 골동품같은 걸 좋아하던 형은 돌절구를 요모조모 뜯어보더니 눈빛에 ‘탐욕’을 담았다. 
“이거, 주인 없는 거니 내가 가져갈까?” 
“상관없겠지, 뭐. 아주 오래된 폐가고, 버려둔 것이니….” 
아버지가 사셨던 오래된 폐가이기에 은근히 ‘우리 것’이라는 동질성이 부여돼 있었다. 맞장구를 쳐주며, 이제 어떻게 가져갈 거냐 하는 고민이 우리에게 던져졌다. 돌절구는 장정 서너명이 들러붙어도 어찌해볼 수 없을 것 같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다양한 고민만 하다 내년으로 미루고 그곳을 떠나왔다. 
그 다음 해에도 형에게는 ‘마음속의 돌절구’로 남았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난해 다시 찾아간 폐가에는 돌절구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수십년간 방치돼 있었을 돌절구였다. 누군가 발견했어도 관심없는 사람이야 그저 돌덩이였을 것이고, 또한 욕심을 내더라도 전문장비가 있거나 장정 여럿이 힘써야 가능했을 일이다. 차가 거기까지 들어가지도 못해, 적어도 20여미터는 옮겨야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어찌 알았을까. 거기에 돌절구가 있었다는 것을.
형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마냥 아쉬운가 보았다. “시골의 돌절구를 탐내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정말 그렇네. 이런 거 수십만원씩 받고 팔아먹으려는 사람 짓일 거야.” 
돌절구는 그곳을 떠나는 게 싫어 스스로 사라졌는지도 몰랐다. 


행복을 빻던 돌절구

돌절구는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있어 추억의 생활도구다. 이제는 시골도 더 이상 돌절구를 사용하지 않지만,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면 아직도 쓰는 곳이 있기는 하다. 
‘돌절구’는 사전상으로 <맷돌이라고도 하며 곡물의 제분에 사용한 재래의 농구>로 표현돼 있다. 예전에는 곡식이나 메주, 양념 등을 빻을 때 쓰였다. 나무절구도 있었는데, 돌절구가 더 흔했다. 절구는 두 사람이 맞공이질을 할 수 있도록 두 개의 절굿공이가 딸려 있다.
방앗간이 없던 시절에는 곡식이며, 콩이며, 고추 등을 가루로 내는 일을 일일이 손으로 처리해야 했다. 방아를 찧을 때는 곡식을 절구에 넣고 ‘쿵덕쿵덕’ 박자를 맞추듯 맞공이질을 하게 된다. 
빨랫감을 두드리는 다듬이질이 음악처럼 들렸던 시절, 돌절구에 방아찧는 소리도 마음을 기분좋게 하였다. 우리는 당시 초등학교 십리길을 오가면서 자주 절구질 소리를 들었다. 절구질이 낮에 들리는 소리라면, 다듬이소리는 주로 밤에 들려왔다.  
한번은 절구질하는 걸 보고는 해보겠다 졸랐다가 후회막급, 힘들고 어려워 몇 분도 못 버티고 공이를 넘겨주었던 기억도 있다. 그 뒤로 다시는 절구를 만지지도 않았나 보다. 
돌절구는 당시 만능이었다. 무엇이든 절구통에 넣은 다음 찧고 빻으면 고운 가루로 변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다루는 기술이 대단했다. 한 뭉텅이 고추를 넣고 절구질을 하고 나면 모든 고추가 하나도 남김없이 가루로 화해버렸다. 제대로 빻아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야는데 말이다.    
절구는 배고픈 시절, 꿈과 희망을 주기도 했다. 밤하늘 둥근 달을 보면 그 안에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는 어르신들 말을 곧잘 믿었었다. 돌절구에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가 아른아른 보이는 듯했으니, 대리만족이랄까. 달을 쳐다보고 있으면 왠지 부자가 된 것처럼 마음이 부유해져서 배고픈 삶의 시름도 잊곤 했다. 

<돌절구도 밑 빠질 날이 있다>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집집마다 마당 한 켠에 돌절구가 있었던 때, 항시 이집 저집 아낙네의 절구질이 끊이지 않았던 시절, 이제 돌절구도 세월의 영락(零落)을 겪고 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유료기사 결제하기 무통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라이프 우리동네 향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