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순 작가의 ‘의미찾기’는 계속 되고 있었다. 얼마 전, 천안 불당동 M갤러리에서 연 개인전도 지난 개인전에서 보여준 ‘(불편한) 관계’의 연장선이다.
흔히 맥을 잇는다고 한다. 맥은 기운이나 힘을 뜻한다. 지난 개인전이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개인전은 다분히 완성도를 가졌다.
▲ 서성순 화가의 개인전 오프닝 행사.
작가가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오른쪽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의 전개가 시계의 부품처럼 꽉 짜였다.
“3·4년쯤 전, 의도치 않게 처한 낯선 환경이 싫고 두려웠었죠. 천안 광덕의 한적한 곳에 일터와 화실을 갖추고 매일 출퇴근하면서 벌어지는 풍경 자체가 말이에요. 온갖 자연계의 생물들이 꿈속에서까지 쫓아왔어요. 특히 발이 많이 달린 지네 말이에요. 전 거미는 그래도 괜찮아요.”
▲ 전시에서 첫번째로 마주치는 작품. 어둡고 두렵고 음침한...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진다.
여성화가의 삶이 갑자기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처럼 뭔가 불쾌한 관계들을 마주하고 서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이 어둠에 쌓인 사람에게 기댈 것은 여명밖에 없다. 그들과 3년간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오면서, 실제로는 마음에 응축된 무언가의 불만이 자기도 모르게 융해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 ‘빗속의 레인보우’다.
비가 끝난 다음에 무지개(레인보우)가 뜨는 것인데, 작가는 그림작업으로 그 시간을 초급하게 앞당겼다. 우리의 삶이 누구에게는 철이 빨리 들고 또다른 누구는 그렇지 않은….
▲ '레인보우(무지개)'는 모두의 마음속에 갖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빗속에 감춰지고 왜곡된 형태로 자리잡아 있는 것 뿐. 그러니 현실에서 레인보우를 만나려거든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라는 것이다.
▲ 작가의 얼굴에도, 작가의 그림에도 레인보우가 떴다.
불편한 관계가 편한 관계가 되기까지는 부정을 뜻하는 ‘아니 불(不)’자만 빼면 되는 것을, 너무 호들갑스럽게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그녀의 그림작업엔 불편과 무지개 사이에 ‘소통’이란 창문을 무수히 달았다. 불편이 크면 그만큼 소통도 많으면 된다는 작가의 깨달음은 ‘일필휘지(一筆揮之)’처럼 그림작업에 돛을 달았다.
▲ 관람객의 눈은 밤바다로 보지만 작가의 눈은 '검은'바다이다. 포용의 검은색.
이번 개인전에서 가장 큰 그의 작품이 무서운 밤바다를 연상케 하는데, 거기에도 밤바다 전체에 윤슬이 반짝반짝 한다. 그것마저도 부족해 소통이라는 포말이 이곳 저곳에서 치솟는다.
아, 그런데 거기에 작가의 반전이 숨어있다. 흡사 ‘대마’를 사석으로 쓰고서 이긴 바둑처럼 말이다. 대마는 죽지 않는다는 바둑용어 ‘대마불사’도 절대고수에게는 닿지 않는다.
“저건 밤바다가 아니라 검정바다예요. 검정은 빛을 흡수하잖아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를 그리고 싶었죠.”
작가만의 밤바다가 펼쳐져 있는 듯하다.
드라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갑자기 그림책 ‘숲속으로(폴 호프)’로 바뀌었다. 참고로 폴 호프의 ‘숲속으로’는 곰, 거인, 용, 괴물 등을 차례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유아책으로 발랄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 다양한 소통의 날갯짓. 보기만 해도 마음이 한없이 자유롭고 밝아진다. 행복의 기운이 물씬.
결국 ‘불편한 관계’도 그같은 관계를 이끌어가는 나와 대상의 네버엔딩스토리다. 특히 ‘나’라는 주체이자 객체적 입장에서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소통할 것인가에 따라 대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우리 삶이 주는 다양한 아이러니(모순)의 하나다.
<마음에 안 들땐 박터지게 싸워봐. 그럼 친구가 되잖아. 친구가 안되면 뭐라도 되겠지.>
▲ 문득 작가의 다음 전시가 궁금해진다. 어떤 네버엔딩스토리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지...
소년들의 세계에서 가끔 쓰는 방식이다.
부딪치면서 오는 소통(이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백날 피하기만 해서는 관계가 나아질 수가 없는 법이다. 작가는 그 3년을 처음은 피하며, 어느 순간 박터지게 싸우며, 그렇게 소통해온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이렇듯 개인전을 통해 연작의 또다른 맛을 진하게 느낀다. 이야기가 있는, 두렵다가 발랄 행복해지는 그림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