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바다에 죽은 소녀가 있다.
스무살이 넘었으니 ‘소녀’는 아닐까.
예쁘장한 미모,
그녀를 죽인 건 바다였지만,
바다에서 죽겠다고 한 건 그녀였다.
바다가 죽인 걸까, 바다에서 죽은 걸까.
그녀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죽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어린왕자처럼 껍데기만 남기고, 실제는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걸까.
몸을 데리고 가기 어려운 곳은, 몸을 놓고 가는 거지.
그렇다면 그녀가, 바다가, ‘죽음’에 관여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녀는 죽은 게 아니니까, 바다는 그녀를 죽인 게 아니니까.
우리의 논점은 다르게 변하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하는 것.
갑작스레 몸까지 벗어놓고 가야 될 먼 길.
우리는 화성의 그녀를 생각해 보았다.
금성과 목성까지 연관시켜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곳에 갔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릴 적 ‘목마와 숙녀’를 생각해 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