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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자유, 소요유 《장자》

임낙호(천안·수필가)

등록일 2023년08월19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임낙호〕 사람은 다 다르다. 어떤 이는 높은 산을 오르기를 좋아한다. 다른 이는 호수 둘레길을 걷는다. 

수십년을 산 아내와 나만 해도 다른 게 더 많다. 아내는 그림을 좋아한다면 나는 책을 더 좋아한다. 어떤 새는 하늘 높이 바람을 타고 날고 어떤 새는 땅바닥과 관목울타리만 넘나든다.
 

     뱃사람들이 재미삼아 
     거대한 바닷새 앨버트로스를 잡는다.

     (중략)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악의 꽃》을 쓴 시인 보들레르는 신천옹을 보면서 이 시를 썼다. 시인의 정서가 담겨있다. 자신의 정신 크기는 앨버트로스만큼 커서 이 세상을 모조리 다 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옳음이 무엇인지 다 아는데, 세상은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니 자신은 아무 힘도 없음을 한탄했다. 그는 너무나 훌륭한 시를 썼는데도 책이 안 팔렸다. 

시집을 싸구려로 팔 수는 없었다. 뱃사람에게 붙잡혀 수모를 당하는 신천옹에 빗대어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나 자신의 날개 즉,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장자란 책을 보면 장자壯子와 장주莊周라는 이름이 나온다. 장자의 ‘자子’는 ‘선생’이란 뜻이다. 우리 식으로 따지면 ‘장 선생님’이라는 경칭이다. ‘주’는 이름이다. 

장자라고 표현된 ‘장자우화’는 장자의 후학들이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기록한 것이다. 장자의 글들을 매우 신성시했다. ‘장주우화’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장자학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래서 장자우화에는 장자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장자는 자유로웠고 소요유逍遙遊를 즐겼다. 반면 장주는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이다.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며 자존심만 내세우는 전형적인 지식인의 모습이다. 

장자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 우화의 소재로 선천적 불구자, 후천적 형벌로 다리가 잘린 사람, 광인, 목수, 백정 등을 등장시켰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결코 불행한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들의 삶이 정치가나 지식인들과는 달리 삶이 무엇인지, 소중한 삶을 어떻게 영위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달인들로 그려져 있다. 

이런 우화를 통해 한편 정치인과 지식인을 조롱하고, 한편으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장주로 기록된 우화들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철학적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장자가 소요유에서 말하는 핵심은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경지다. 범인들이 보기에 자유로워 보일지라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열자列子 역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바람에 ‘의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도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우화를 보면, 
  
북쪽 바다에 이름이 곤鯤이라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곤의 둘레의 치수는 몇 천리인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었는데, 새 이름이 붕鵬이었다. 붕의 등은 몇 천리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로 컸다. 붕이 가슴에 바람을 가득 넣고 날 때, 양 날개는 하늘에 걸린 구름 같았다. 그 새는 바다가 움직일 때 남쪽바다로 여행하려고 마음먹었다. 
  
참새가 대붕이 나는 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저놈은 어디로 가려고 생각하는가? 나는 뛰어서 위로 날며, 수십 길에 이르기 전에 수풀 사이에서 자유롭게 날개를 퍼덕거린다. 그것이 우리가 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데, 저 새는 어디로 가려는가?” 
  
사람들이 얘기하기를 대붕이라는 존재는 ‘절대 자유’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절대로 자유롭지 않다. 재수 없게 태풍이 불지 않으면 1년 내내 날지 못하고 처박혀 있어야 한다. 참새는 비웃는다. 참새는 보들레르의 시에서 선원같은 존재이다. 대붕은 곤이라는 물고기에서 변했다. 변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 프란츠 카푸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바퀴벌레가 되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대붕은 허구적인 새이고, 참새는 현실의 새이다. 참새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대붕은 우리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초월적 자리를 상징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비약해 대붕같은 초월적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현실세계에서 비약하여 이 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철학자이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할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를 옥죄고 있는 조건을 넘어서는 게 진정한 자유이다.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바람을 잘 타보자. 대붕이 되고 싶다. 안 그러면 처박혀 있어야 하니까. 

  


 

편집부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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