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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선생, “서예입문, 배워보시겠습니까”

9월부터 나사렛대 평생교육원에서 첫 서예수업, ‘즐거운 수업’ 목표 

등록일 2023년08월2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청운(靑雲) 양태호(65·천안). '청운'의 꿈을 안고 살았다. 그의 서예스승 진중왕이 지어준 이름이다. 청운의 뜻은 ‘푸른 구름’. 꼬마아이의 순수한 마음이자, 높은 벼슬을 비유적으로도 일컫는다.

그가 태어난 곳은 공주 신풍면 동막마을. 영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순수함이 가득한 곳이다. 어린 시절 마을 뒷산 동막골에서 친구들과 가재잡고 놀던 추억이 나이들수록 새록새록하다. 
 


그는 사업가이자 서예가이다. 평생 사업가로 살았다. 그리고 이제는 서예가로 살아가려 한다. 마침 ‘서예교수’로 초빙돼 준비가 한창이다.  

사업가로도 ‘적당히’ 성공했고, 서예가로도 ‘적당히’ 쓰는 정도. 스스로를 바짝 낮춘다. 인생화두가 ‘욕심(欲心)’인 까닭이다. 

욕심만 잘 다스려도 한세상 즐겁게 살아가는데 넉넉하다. 그도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과 욕심내야 할 것을 구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살면서 욕심내면 안되는 것이 돈, 명예, 권력인데,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주어져야지 억지로 끌어오면 체하고 탈이 나는 법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신 욕심내야 할 것으로는 배움과 사랑, 건강, 봉사, 칭찬 등이 있는데, 그중에도 ‘배움’은 태어나면서 평생 지고 살아야 하는 것 중에 으뜸이다.
 

▲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기 위해 붓을 든다. 배움보다 더 즐거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서예에 입문한 건 1992년도이다. 이후 꾸준히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30년이 막 지났다. 쌍용동 로데오거리에서 수제구두점을 해오다 2년 전 ‘경제인생’을 일단락 지었다. 남들은 제2인생이다 뭐다 해서 다시 돈버는 일에 새롭게 나서기도 하지만, 그는 정신적 안빈낙도를 꿈꾼다. 

이번에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은 그에게 ‘서예교수’를 권했다. 고민도 했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해 ‘해보겠소’ 하며 응했다. 오롯이 배워왔던 사람이 가르치는 입장에 서면 몸과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배워왔던 것도 더욱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니 스스로에게도 더 크게 더 넓게 더 깊게 배우는 계기도 될 것이다.  

오는 9월6일부터 시작되는 첫 수업에 그는 서예 기본5체 입문과정을 가르칠 예정이다.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가 그것인데 이중에서도 기초는 행서와 예서다. 일주일에 수요일 저녁 2시간으로 한 학기 모두 15강 30시간을 가르친다. 

“붓글씨만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다. 틈틈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붓을 통해 심신수양도 함께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붓글씨와 관계지향, 두가지 토끼를 잡는데 정성을 쏟아야죠.”


30년만의 제2인생, ‘서예교수’로 출발


▲ ‘신언서판(身言書判)’은 그가 좋아하는 말이다. 당나라때 관리를 선발하던 기준으로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과 판단력을 말한다. 그 스스로도 살면서 언사가 바르며 필치가 힘이 있기를 노력해 왔다.


부모가 ‘큰 시골부자’였다는 그는 스무살에 벌써 ‘사장님’ 소리를 들었단다. 서울에서 어머니는 포목점을 운영하시고, 아버지는 한국전쟁 전 조선호텔의 지배인이었다. 전쟁으로 고향 공주 신풍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정착을 하셨다. 두 분 모두 군청 공무원으로 생활하시며 느즈막이 농사도 지으셨다. 

그는 천생 사업가였다. 공부에 그리 관심없던 그는 일찍 서울 충무로에서 의상기술을 배웠고, 군에 들어가기 1년 전 어린나이에 덜컥 ‘양장점’을 차렸다. 부모의 자본이 들어갔다. 학교 교복으로도 낙점돼 계약할 정도로 사업수완을 누렸다. 군에 다녀와서는 100평짜리 횟집을 열었다. ‘장사’는 안됐고, 술(친구)만 늘었다. 

1989년 천안에 첫 백화점이 생겼는데 형님 덕에 그곳에 입점, 브랑누아 대리점을 새롭게 운영했다. ‘천안사람’이 된 것은 그때부터다.
 


사람들이 처음 낯설어하던 백화점은 점점 불야성을 이뤘다. 3년쯤 되어 하루 수십켤레씩 판매하게 되면서 경제문제가 사라지자 퍼뜩 머리에 맴도는 생각이 ‘서예’였다. 학창시절 팬글씨 잘 쓴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던 터. 할아버지는 글방선생으로, 아버지 또한 붓글씨가 예사롭지 않았으니 자연 그같은 ‘유전자’가 그를 유혹했던 것이다. 

“무언가 배우고 싶었어요. 당시 가게에서 나오면 바로 진중왕 원장님이 운영하시던 충남서예학원이 눈에 띄었죠.”
 


그렇게 진 원장님을 스승으로 삼게 되었고, 꾸준한 노력 끝에 2012년 초대작가가 되었다. 

서예입문 30년만에 이제 가르치는 자로 첫 발을 띄게 된 양태호 선생. 지인들 10여명이 그와 함께 하며 서예를 배우고자 등록해놓고 있다. 
 

김학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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