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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유해, 65년 만에 햇볕 봤다

서산, 태안, 당진, 예산에서도? "내년 2월 본격 발굴"

등록일 2015년11월24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6월 말과 7월 충남 전역에서 군인과 경찰이 보도연맹 가입과 부역 혐의를 이유로 민간인을 끌고가 학살했다. 사진은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현장.

굴삭기 소리가 골짜기를 흔들었다. 웅덩이가 깊어졌다. 벌써 두 시간 째다. 파낸 흙이 작은 집 한 채 크기만큼 쌓였다.

15일 오전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40여 명의 시선은 굴삭기 삽날에 쏠려 있었다. 폐광 입구를 찾기 위해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6월 말과 7월 충남 전역에서 군인과 경찰이 보도연맹 가입과 부역 혐의를 이유로 민간인을 끌고 갔다. 그리고 곳곳에서 학살했다. 9월 말 인민군들이 물러갔지만 학살은 계속됐다. 충남 서부 지역인 서산, 당진, 홍성, 예산에서는 인민군 점령기에 좌익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의 유족과 대한청년단 등 우익단체 구성원, 의용소방대, 낙오군인, 낙오경찰 등이 치안대를 구성했다. 이어 경찰과 합세해 인민군에 대한 부역 혐의가 있거나 좌익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복적으로 연행, 구금, 살해했다.

구덩이에 버려진 시신…폐광 입구마저 사라지다

이중 일부는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마을 폐광산으로 끌려왔다. 이 곳에서는 당초 1950년 10월 8일 광천지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던 36명의 부혐혐의 주민들이 끌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초 경 이 곳에서 인근 시 군 보도연맹원들이 대거 끌려아 희생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당시 부친을 잃은 최홍이씨(73)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7월 초경 아버지가 이 곳에서 총살 된 후 암매장됐다는 얘기를 직접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곳에 암매장된 희생자가 홍성은 물론 광천읍과 가까운 예산, 서산, 태안에서 끌려온 주민들도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몇 구이 유해가 발굴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폐광 입구마저 흙더미에 파묻혔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아래 유해발굴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은 이날 오전 9시부터 폐광 입구를 찾기 시작했다. 유해 암매장지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 2014년 2월 발족한 공동조사단은 매년 한 곳씩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의 방치된 유해를 찾아 발굴하고 있다. 지난해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39명의 유해와 유품을, 지난 2월에는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대전 동구 낭월동) 약 20명의 유해와 유품을 발굴했다. 이번이 3차 발굴지다.

한 시간여 동안 부지런히 굴삭기 삽날이 오갔지만 허사였다. 오전 10시. 참석자들이 작업을 멈추고 제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유가족 최홍이씨는 재상에 술잔을 올리며 "제발 유해를 찾게 해달라"고 염원했다. 최씨는 부친의 유해가 이곳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종민씨도 엎드려 아버지의 유해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씨의 부친인 이강세씨는 일제강점기 홍성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해방 이후에는 홍성군농민조합장으로 일했다. 참석자들도 "반드시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반드시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간단한 제례가 끝난 후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오전 11시 10분경. 현장을 지휘하던 박선주 유해발굴단장이 급히 손짓하며 굴삭기 작업을 중지 시켰다. 유가족과 참석자들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폐광 구덩이로 보이는 입구가 드러났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실제 유해가 매장돼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10여 명의 발굴단들이 호미를 들고 흙을 들추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여기요! 여기!"

호미질을 하던 한 발굴단원이 소리쳤다. 큼지막한 정강이뼈가 드러났다. 인근에서 또 다른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정강이뼈와 턱뼈가 잇달아 발굴됐다. 희생자의 몸에 박혀 있던 것으로 탄두(카빈 또는 M1 소총)도 나왔다. 땅속에 묻힌 지 65년 만에 희생자 유해에 햇볕이 스며들었다. 이날  2명 정도로 추정되는 유해 수십여 점이 발굴됐다.

폐광 구덩이 속에는 몇 명의 희생자가 묻혀 있는 것일까? 유해매장을 공식 확인한 유해발굴단은 내년 2월 중에 본격적인 유해발굴을 벌일 계획이다. 유해발굴단은 발굴비용을 시민 모금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안경호 4.9 통일평화재단 사무국장은 "수십 년 동안 캄캄한 폐광 속에 갇혀 있는 유해에 햇볕이 비출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뜻 있는 시민들의 후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충남지역언론연합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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