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숙 시인(54)이 시집『나무들도 배고파 꽃을 피운다』를 냈다.
결핍을 겪으며 성장한 세대라고 다 꽃을 밥으로 보진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허기진 여자’란 시에서 나오는 것처럼 이주노동자나 노숙자, 폐지 줍는 이와 은둔자 등 어렵게 사는 이들을 그냥 보지 않는다. 1부가 ‘사람아 사람아’인 이유다.
2차 세계대전 시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부터 우리 주변의 배고픈 이들과 힘든 상황에 있는 이들을 껴안는다. 2부가 ‘향은 향이어서’인 이유다. 모과, 질경이, 간장게장, 팥배나무 등의 시에선 서로 녹아들어 새로운 맛을 내며 어렵지만 함께 살아내며 희망을 쓴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더 보이는 것은 환경에 관한 시다. ‘페로의 바람은 고래처럼 운다.’라는 3부의 제목에서처럼 고래 피로 붉게 물든 페로의 바다와 봉서산에서 사라진 고라니와, 장재천에서 죽어가는 왜가리와 물고기를 이야기한다. 환경의 파괴와 변화를 걱정하는 시선이 세계와 우리 지역까지 아우른다.
시인의 첫 시집『나비걸음』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이곳저곳을 더듬은 시었다면, 두 번째 시집『사람이 보인다』는 사람을 주로 담았다. 홀로 담금질과 풀무질로 보낸 이의 시간이 보이고, 몇 점의 그늘과 얼룩이 보였다고 한 것처럼 가족과 주변인을 불러내어 그들의 삶을 보며 자신을 담금질하며 시를 익혔다.
천 시인은 충남 문인협회와 천안 문인협회에서 활동 중이다. 예술강사로 생활하니 늘 문학을 가슴에 안고 산다고 해야 맞다. 길을 가면 길가에 보이는 것을, 골목을 걸으면 골목에서 보이는 것을,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쓴다. 그런데 그것들을 보는 눈이 늘 곡진하다. 진실하다. 어떻게 하면 시다운 시를 쓸까를 늘 고민하는 시인이다.
‘점과 점 사이’를 보자.
상략
긴 호흡으로 중심을 잡아 본다
몇 번의 밤은 부스러기를 남긴 채 사라지고
다시 올 밤은 너무 급하게 온다
하루에도 몇 개의 점을 찍는다
점과 점이 이어져 하루가 되고
지지 않는 한 송이 꽃이 된다
점의 중력을 읽는 저녁이 깊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계절노동자부터 노숙자, 집을 나와 배회하는 이들의 슬픔을 시인은 가슴으로 또 몸으로 안는다.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은둔하는 이들의 마음도 헤집어 본다.
벚꽃을 팝콘으로 목련꽃을 아이스크림으로 이팝나무꽃을 하얀 쌀밥으로 보는 시인은 그런 배고픈 시절을 알기 때문에 힘든 사람이 더 자세하게 보이는가 보다. 그런 그들에게, 또 자신에게 납작 엎드려 밟혀도 살아남는 질경이를 이야기한다. 그늘에서도 또는 빛 한 줄기만 있어도 푸른 것들은 핀다며 천천히, 느리게, 희망이라는 땅 위를 걷자고 위로한다.
시인의 시어는 어렵지 않으나 의미가 깊다. 간장게장을 말하면서 간장의 또 다른 말은 비밀이란다.
비밀을 위해서는 스며야 한단다. 잠깐의 스침은 낯설지만, 어둡고 캄캄하며 깊지만, 한사람 한 사람이 인연으로 깊어지려면 간장이 게의 살 속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 듯, 새 이름을 위해 내 이름을 버리고 스며들어야 한단다. ‘간장게장’ 전문을 보자.
간장의 또 다른 말은 비밀이다
비밀을 위해서는 스며야 한다
잠깐의 스침은 낯설다에서 한 걸음 나간 것
마음은 어둡고 캄캄하고 깊다
꽃게가 검은 간장 속에서 속살이 삭아 가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인연이 되려면 자신의 속살을 보여 주어야 한다
생채기에 딱지가 내려앉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겨울은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단풍이 물들 것이다
간장의 또 다른 이름은 시작이다
풋것들이 간장 속에서 다시 살기 위해 스미고 있다
마당의 잡초로부터 먼바다의 고래까지 아우르는 시인은 자연을 깊은 눈으로 본다.
고래의 몸에서 플라스틱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피로 물든 바다에선 목이 잘린 어미 고래 옆에서 갓 태어난 새끼 고래의 지느러미가 흔들리는 것을 보며 우리가 버린 것들이 우리의 생사를 쥐고 있다며 경고한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듯, 눈에 드는 보랏빛 맥문동꽃, 저 작은 꽃잎이 세상을 일으키는 중이란다. 그리고 작은 꽃대 같은 시인은 꽃이 되어 비의 감정을 생각한다.
시인의 사람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어디서 왔을까?
어린 시절에 눈으로 몸으로 체득한 것들은 마음에 각인이 되는가. 시인의 시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아버지가 여름에 웃옷을 벗고 등목할 때 본 아버지의 어깨엔 지게 자국이 검붉게 있었다. 온 가족을 등에 멘 흔적이다. 파인애플을 자르며 생긴 내 손의 힘줄에서 아버지의 핏줄이 드러난 손목을 떠올린다. 달디 단 파인애플 조각이 아버지의 살점으로 느껴지는 순간, 시인의 목울대가 흔들린다. 장마를 이기지 못하고 붉은 고추가 병들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같이 병석에 있던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인의 가슴은 먹먹하다. “살아가면서 한 번은 멋지게 필 날이 있다.”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는 시인은 봄에 돋는 연두색 싹같이 잘 살고 있다고 자기를 위로한다.
팥죽으로, 또 칼국수로 가족을 뭉치고 치대 숙성시킨 엄마 덕에 국수 국물보다 더 뜨거운 김을 식솔들은 나누며 살았단다. 그 엄마를 보내고 문을 닫고 가슴앓이를 했던 시인은 무덤가에 할미꽃 한 송이가 핀 것을 보고 엄마를 본 듯 안도하며 문을 연다.
나태주 시인은 ‘천현숙 시인은 여간 깐깐한 인물이 아니다. 오랜 나날, 시에 매달리며 산 사람이라서 시를 대하는 열성도 열성이지만 시의 문장을 천착해 들어가는 솜씨가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감정이나 삶의 강화, 즉 인생을 아름다운 언어로 치환시킬 줄 안단다.
시를 쓸 때는 그렇게 날카롭고 깐깐하다는 천 시인은 보통의 삶에서는 늘 웃는다.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활짝 웃는다. 가슴에 든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다 시어로 녹여내는 기쁨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