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도
산에 갈 때마다
눈에 띄는 도토리 주워
풀숲에 던져 주었다
사람 발에 밟히면
으깨져 아뿔사!
산행길
풀숲에서
고마워 고마워, 하는 소리 들렸다
인간의 말소리가 아닌
산과 도토리만이 낼 수 있는
바람의 소리였다
▣ 내가 주로 다니는 산은 태조산이다. 집 근처에 있어 맘만 먹으면 쉽게 다녀올 수 있다. 가을이면 산에 갈 때마다 산길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나 상수리를 주워 풀숲에 던져 준다. 사람 발에 밟히면 으깨져 버리기 때문. 풀숲에서 겨울을 잘 나고 내년 봄을 기약해보라는 뜻에서이다.
도토리나 상수리뿐만 아니라 민달팽이나 지렁이도 내가 돌봐주는 것들이다. 그 외 곤충이나 산짐승의 사체들도 눈에 띄면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보살펴준다.
작년에는 한 번 산에 가는데 내가 풀숲에 던져 준 도토리가 200개가 훨씬 넘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는 도토리가 많이 열리지 않았다. 몇 번 던져 주고 나니 눈에 띄는 게 별로 없었다. 바람에 섞여 들려오는 ‘고마워’ 하는 소리를 올해는 도토리보다 달팽이나 지렁이한테 더 많이 들었다.
▲ 올 가을에 나온 따끈따끈, 조재도 시인의 시집.
조재도(천안 안서동): 1985년 『민중교육』지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좋으니까 그런다』 외 10권의 시집을 냈다. 소설 『이빨 자국』, 청소년소설 3부작 『싸움닭 샤모』, 『불량 아이들』, 『만남으로 로그인』, 우화동화 『오리와 참매의 평화여행』, 『전쟁 말고 평화를 주세요』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평화로워야 진정한 평화다, 라는 생각에 ‘청소년평화모임’ 일을 하고 있다. 산, 책, 글, 밥, 잠의 한 글자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