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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삶까지 앗아간 HIV의 나쁜 이미지

등록일 2022년06월02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박정완 교수/순천향대천안병원 감염내과

# 한 청년은 어느 날부터인가 열이 나면서 호흡 곤란이 심해져 응급실을 방문했다. 의료진이 시행한 폐CT에서는 남아 있는 정상 폐가 거의 없을 정도의 중증 폐렴 상태였다. 검사 결과 폐포자충 폐렴으로 확진이 되었고, CD4 세포 수가 10개 미만의 AIDS 상태였다. 다행히 적극적인 항생제 치료와 중환자 치료로 폐포자충 폐렴은 점차 회복됐지만, HIV 감염증의 특성상 적절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다른 기회감염증이 발생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그런데 한사코 환자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거부하였다. 본인의 HIV 감염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떠한 설득에도 그는 추가적인 치료를 모두 거부하고 자의로 퇴원했다.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청년이 의식을 잃은 채로 다시 병원에 실려 왔다. 예상했던 대로 면역력 저하에 따른 기회감염증(크립토코커스에 의한 뇌병증)이 발생된 것이다. 어떻게 더 손을 써볼 새도 없이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렇듯 많은 HIV 감염인들은 가족에 대한 비밀 유지에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심한 우울증이 생기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HIV 감염증이 지니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만성질환과 다름없는 질환인데

병태생리상 남성 동성애자에서 주로 발생되는 HIV 감염증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성소수자와 함께 터부시되곤 한다. HIV 감염인들은 그래서 양지에서 본인을 드러내기보다는 음지에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적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사회에서는 HIV 감염증이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다른 만성 질환들처럼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본다. 

가족의 이해와 지지만 있다면

HIV 감염인들 자신이 HIV 감염증에 걸릴 것이라고 과연 예상했을까? 확진되었을 당시 느꼈을 그들의 좌절, 슬픔, 분노는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그들의 가족이 옆에서 지지해주고, 지켜봐 주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HIV 감염인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감염증을 받아들이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치료효과 높고, 심신 모두 건강

실제로 가족들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함께 병원에 다니는 HIV 감염인이 소수지만 있다. 병원에 오는 그들의 발걸음은 다른 감염인들에 비해서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일상생활을 공유하고, 서로 건강을 챙기는 모습은 여느 가족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필자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지만 그들은 약을 챙겨 먹는 순응도도 더 높았다. 그리고 다른 합병증의 발생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정신건강학적인 부분에서도 훨씬 건강해 보였다. 

사회·가족의 이해·지지로 보호받길

HIV 감염인에게 있어서 HIV 감염증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않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그 누구보다 가족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것, 내가 어떤 터부시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관리가 필요한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세상이 인식하는 것, 그래서 떳떳하게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인, 가족들의 지지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박정완 교수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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